적멸보궁 사자산 법흥사 - 3 0
 작성자: 정암사  2011-03-20 17:38
조회 : 4,993  

사자산문

달마 이후 중국 선종사에서 최초로 집단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지는 4조 도신스님(500여명)과 5조 홍인스님(천여명)을 거쳐 6조 혜능에 의해 사상적 정립이 이루어진 선은 마조도일이라는 걸승이 배출되면서 인류사에 커다란 정신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특히, 5조 홍인의 제자로 장안과 낙양의 제도권에 들어가 선법을 전파한 혜안스님과 신수스님의 활약 그리고 신회스님의 혜능선 선양운동, 마조스님과 그의 제자 백장회해(720~814), 서당지장(735~814), 남전보원(748~834)등 선사들의 업적은 두드러진다.

신라말의 선승인 도윤스님이 825년 당으로 건너가 남전보원으로부터 "내 종의 법인이 동국으로도 가는구나!"라는 말을 듣는다. 847년 당에서 돌아온 도윤스님은 절중스님에게 선법을 전한다. 절중스님은 도윤스님이 조계(육조)-남악-마조-남전으로 이어지는 법을 전해 받았고 자신은 도윤으로부터 다시 법을 이어받았으니 굳이 당나라에 갈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절중은 16년간 선원에서 정진하여 득의를 이룬 후 886년에 사자산 법흥사에 선문을 개창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구산선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방대했던 사자산문(獅子山門)이다. 절중이 산문을 창건한지 4년만에 전쟁의 여파로 몰락했던 흥녕선원은 절중이 입적한지 40년이 지나서야 중흥하게 된다. 후삼국 혼란이 수습된 고려초에 지역호족의 후원을 받아 흥년선원을 중창하여 선원의 위상이 확대된 결과 11세기에 이르러 도윤의 계보를 아우르는 문파는 자신들을 사자산문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사자산문의 선사상은 절중스님이 얻었다는 '망언지경'과 '득의지장'의 내용으로 보아 스승 도윤을 넘어 분별 망념을 버리고 곧바로 본질계의 직증을 강조한 남전의 가르침과 맞닿아있다. 이런 점에서 남전-도윤-절중으로 이어지는 사자산문의 선사상은 분별망념의 제거와 본질계의 체득이라는 정통조사선의 관점을 그대로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흥녕선원은 9산 선문이 번창할 때 2천여명의 수행납자들이 운집하여 수행하던 큰 가람이었다. 오늘날 법흥사는 사자산문의 옛 명성을 되찾아 청정승가의 기운을 되찾고자 흥녕선원의 복원을 서두르고 있다.

http://www.bubheungsa.or.kr/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