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중대 사자암 - 1 0
 작성자: 정암사  2011-03-0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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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중대 사자암



불교 성지로서의 오대산 '오만보살신앙'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자연을 경외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산을 숭배하였다. 산을 신비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경건한 마음으로 숭배한 까닭은 산을 신인(神人)이 사는 곳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되면서부터 이러한 자연 신앙은 자연스럽게 불교 신앙에 녹아 들었다. 그 중에서도 산을 숭배하는 신앙이 불교화한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대산의 문수신앙과 오만보살신앙이다.

오대산의 연원은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자장율사에 의해 ‘1만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산’으로 개산된 것이 가장 오랜 기록이다. 오대산이 진성(眞聖)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믿게 된 것은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화현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정골사리, 가사, 발우 등을 얻으면서부터이다. 이로써 "동북방 청량산에 문수보살이 계시면서 일만의 권속을 거느리고 늘 설법한다"는 [화엄경]을 바탕으로 한 오대산 신앙이 우리나라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8세기 들어서는 보천과 효명 태자에 의해 오류성중(五類聖衆)이 머무는 곳으로 발전되었다. 동대에 관음보살 진신 1만, 서대에 대세지보살 1만, 남대에 지장보살 1만, 북대에 500 대아라한, 중대에 1만 문수보살이 머무른다 해서 5대가 형성됐고, 부처의 정골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중대 위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오대산의 속살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오대산장 안의 연화탑, 상원사 입구의 관대걸이, 중대 사자암의 고사한 단풍나무에 얽힌 사연을 음미하고, 적멸보궁에 이르러서는 주변의 지세를 눈여겨봐야 한다. 1965년 여름 사망한 남녀 대학생 10명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운 연화탑에서는 산의 깊이와 자연의 엄격함에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조선 초 세조가 목욕하며 의관을 걸어두었다는 관대걸이에서는 오대산의 후덕함을, 한암 스님의 일화가 서린 단풍나무 앞에서는 생로병사의 무상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오대산은 이렇듯 불교성지로서 정신과 신앙의 귀의처였던 만큼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뛰어난 유물들이 많다. 오늘도 오대산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서 부처님 법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는 월정사를 비롯하여 납자(納者)들이 정진하는 상원사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등이 우리나라 최대의 불교성지로서 그 몫을 다하고 있으며 마음의 안식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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