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의 올바른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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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암사 작성일11-07-19 14:22 조회14,711회 댓글0건본문
불자의 기도
모든 생명이 어떤 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그 창조한 주인의 뜻대로 살아야만 하는 것이라면 기도는 아주 간단한 것이 된다. 주인의 마음에 들 수 있게 살아갈 터이니, 내게는 없는 능력을 달라고 하거나, 나의 문제를 주인더러 해결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는 것이 기도의 내용이 된다. 힘없는 내가 힘있는 이에게 청탁을 하고, 나는 힘있는 이의 뜻대로 살아 가면 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에 의하면 모든 생명은 본래 온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이며, 스스로 이미 모든 능력과 행복을 갖추고 있는 존재이다. 다만 스스로가 스스로 지은 업에 의하여 잘못 생각하고 판단하여 스스로를 힘없는 존재로 착각하고 불행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 경의 비유에 의하면 세상 사람들은 품안에 온 세상을 살 수 있는 보배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거지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거지이면서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자신이 원래 부자인 줄을 모른다. 거지의 동냥방식으로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 스스로 부자임을 자각하고 부자로 살 수 있는 마음가짐과 스스로의 재산을 쓸 수 있는 방식을 익혀야 한다. 지금까지의 거지로서의 동냥방식과 사고방식에 대한 일대전환이 필요하다. 부자로서 살 수 있도록 부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이것이 불자의 기도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나만이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럴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다. 관세음보살께서 원력으로서 우리들에게 약속을 하셨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의 크나큰 사랑이 들어 올 수 없도록 우리가 마음에 빗장만 굳게 걸지만 않고 있다면 약속은 반드시 지켜 진다. 역대에 걸친 수 많은 영험록이 이를 증명한다.
때로 관세음보살의 사랑은 우리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오기도 한다. 기도의 결과 더 큰 어려움이 온다고 해도 이는 기도가 영험이 없음도 시련을 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들의 마음의 뿌리까지 살펴 아시는 보살께서 내가 기대한 눈 앞의 이익보다도 더 큰 것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 진다면 관세음보살은 나와 꼭 같이 생각하는 내 수준의 존재일 뿐이다. 사기꾼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며 투자를 요구받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는 것이 그 사람을 도와 주는 것이 아님과 같은 이치이다.
"관세음 보살님은 영험하여서 내가 기도만 하면 반드시 이루어 진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이가 부탁한다고 그것을 다 들어 준다면 이는 그 사람이 보살을 부리는 것이다. 그 사람은 관세음보살께 기도 드린다고 하며 사실은 자신이 보살의 주인이고 보살은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는 셈이다. 중생의 중생스런 부탁만을 들어주는 존재가 어찌 관세음보살일 수 있겠는가. 기도를 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내 마음대로 부리고 싶어하는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 기도란 내가 불보살을 내 마음대로 부리는 것이 아니라 불보살과 하나되어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어떻게 기도하는가
우리가 보살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올바르게 사는데 방해가 되는 괴로움과 괴로움을 일으킨 마음일 뿐이다. 그 고와 고의 마음을 버리고 생명의 본래 모습인 평안과 행복으로 나와 더불어 모든 사람이 참답게 사는 것, 그것이 보살이 받고 싶어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간절한 일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것을 관세음보살께 드리면 된다. 드리면 반드시 보살께서는 받으시고, 받으면 반드시 응답이 있게 마련이다.
기도의 첫번째는 불보살께 선물을 드리는 것이다. 괴로움은 본래의 나의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드리면 된다. 조목 조목 정리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보살 전에 바치면 된다. 바치는 순간 그것이 이미 나에게서 떠났음을 느끼면서 다음으로 염불을 한다.
소리 높여 이름을 부르는 것 만이 염불은 아니다. 염불이란 글자 그대로 불보살을 간절히 생각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생각하고 크나 큰 공덕을 생각하고 환한 지혜의 빛을 생각하면서 보살의 사랑에 젖어 들면서 하나가 됨을 느껴야 한다.
염불을 하면서 내 소원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내 소원은 발원을 하여 보살께 드린 순간 이미 보살께서 받은 것이다. 그것을 절을 하거나 명호를 부르면서 머리 속에 되뇌인다면 나는 염불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소원이란 관념에 절하고 소원이란 관념에 염불하는 것이 된다. 입으로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마음의 문은 꽁꽁 걸어 잠그고 있는 형국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였다고 하자. 내가 그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결심하고 말을 하면 그는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결심을 하고 약속을 했는데도 그가 내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를 도와달라고만 하는 이야기를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계속 반복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 마음과 내 약속도 믿지 않으면서 도와달라고 하는 모양이 된다.
본래 완전함이 나의 본래 모습임을 굳게 믿고, 오로지 관세음의 분위기에 젖어 들어 가기만 한다. 염불을 하면서 내 소원을 생각하는 것은 관세음보살을 못미더워하는 행위이다. 믿음의 부족이다. 그래도 내 소원이 떠오른다면 더욱 더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 내 생각에 오직 존재하는 것은 관세음보살 뿐이어야 한다.
그렇게 관세음과 하나가 되면서 나를 텅 비울 때 관음의 백천 삼매는 나에게 들어 올 수 있다. 마침내는 관세음이란 대상도 잊는다. 이렇게 몰입하면 안팎의 관음이 하나가 되어서 관음삼매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런 다음 기도가 끝나면 회향을 한다. 소원을 다시 한 번 간절히 구체적으로 정리하여 보살께 드리고, 그 공덕으로 모든 생명들이 이익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발원해야 한다. 기도의 요체는 믿음인 만큼 내 소원에 절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언제 기도 하는가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를 불보살께 기도한다. 질병 승진 사업 입시 자녀교육 직장 부부관계 등등 삶의 모든 문제가 괴로움의 원인으로 작용할 때 이를 불보살께 드려야 한다. 괴로움의 바탕까지 드려야 한다. 괴로움이 일어난 원인과 과정 그리고 그동안의 잘못된 대처방법 등등 모든 중생스러운 것을 드려야 한다.
질병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간절히 기도하여야 한다. 하나의 질병이 일어나 병고에 시달리면 간절히 발원하여야 한다. 이 병을 낫게만 해 달라고 기도하여서는 안된다. 병이 일어나기까지의 나의 모든 잘못된 삶을 참회하고, 이 병에 매달려 일으킨 나의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이 병이 나음으로서 더 많은 이들에게 빛을 줄 수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이 질병을 보살께 드려야 한다.
이 기도가 질병을 일으켜온 나의 삶이 본래 질병이 없는 나로 완전히 바뀌어 거듭 새로 태어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삶이 잘못된 가치관에 의한, 그 결과로 질병을 일으켜 온 삶이었다면 기도의 결과 나의 삶은 관세음의 빛 속에서 관세음과 하나되어 관세음으로 살 수 있는 삶으로 바뀌어야 한다. 중생으로의 삶이 보살의 삶으로 바뀔 수 있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행복한 가정을 원하면 간절히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로 행복한 가정을 이룬 많은 사람이 있다. 초혼에 실패한 어떤 사람이 있었다. 상대에 대한 모든 원망과 미움의 감정을 돌이켜 보니 그것은 모두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결혼 전에는 서로가 내가 너를 기쁘고 편안하게 하고자 '내가 너답게' 살았었는데, 결혼 후에는 네가 나를 기쁘고 편안하게 살게 하려한 '네가 나답게'를 요구해온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혼과 가정이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알게 된 이후 그는 불보살 전에 깊은 참회를 하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다시 사랑이 찾아온다면 이 사랑이 서로를 넉넉하게 하고 마침내는 이웃에 까지 흘러 넘쳐서 모든 이들에게도 안락과 평안이 깃들 수 있기를 발원하였다. 기도 후 초등학교 학생이던 아들이 자기의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왔고 마침내는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간절한 기도는 자신의 변화와 아울러 예기치 못한 곳에서 기대이상의 결과를 가져 온다.
기도는 괴로울 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즐거울 때도 기도를 하여야 한다. 내가 느끼는 즐거움의 밑바탕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도 중간도 끝도 훌륭한 법이 부처님의 법이라면 단지 이 순간 내가 느끼기에 좋다고 그것이 부처님 법에 합당한 즐거움일수는 없다. 그 밑바탕부터 즐거운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한 때의 즐거움일 뿐 두고두고 후회할 괴로움의 시초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텅빈 마음으로 그 즐거움의 근원을 살필 수 있기 위해서는 기도에 의지해야 한다.
이렇듯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힘이 넘칠 때나 기도로 일관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 때 우리에게는 진리의 빛이 충만한 지혜의 삶이 가능한 것이다. 세 속의 얕은 꾀가 참된 지혜는 아니다. 불보살의 지혜는 앞에서도 누누히 얘기했던 것처럼 눈앞의 현상보다 그러한 현상 이면에 그것을 유지시켜주는 근원을 살피는 힘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일방적인 부탁도 명령도 아니다. 기도의 과정을 통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모든 것을 불보살께 드리고 불보살의 사랑과 삼매 속에서 하나되어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어리석음의 삶을 정리하고 반성하여 불보살께 다 드리고, 나도 남도 모두 이로운 지혜의 삶을 발원하고서, 불보살의 삼매와 사랑에 하나가 되어 몰입하면, 내 예상보다도 훨씬 다른 모습으로, 더 좋은 방법으로 해결된 온갖 문제와 아울러 한층 더 넓어지고 성숙된 지혜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부디 많은 이들이 참다운 기도공덕으로 보살도의 삶에 동참하여 이 세상이 부처님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나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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