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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가 현대에 남긴 화엄의 가르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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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암사 작성일12-04-28 18:54 조회12,6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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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가 현대에 남긴 화엄의 가르침은?

윤창화 민족사 대표

▲ 탄허 스님이 남긴 원고 일부.
탄허(呑虛·1913~1983) 스님은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고승 가운데 한 분이다. 22세에 입산하여 70세로 열반할 때까지 40여년 동안 대승불교의 심오한 경전인 ‘화엄경’과 ‘화엄론’, 그리고 ‘화엄경소초’ 등 이른바 ‘화엄학의 3대서’를 우리말로 완역한 업적을 이뤘다. 그 밖에 선(禪) 사상의 중요 경전이자 강원(승려들의 전통교육기관)의 교재인 ‘능엄경’과 ‘기신론’ ‘금강경’ ‘원각경’ ‘사집’ ‘치문’은 물론이요, 중요한 선어록인 ‘육조단경’과 ‘보조법어’ ‘영가집’, 유가와 도가의 경서인 ‘주역’ ‘노자도덕경’ ‘장자’에 이르기까지 약 70여권의 방대한 역서를 남겼다.

그는 불승이었지만 불교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유학과 노장(老莊) 등 동양사상을 통섭(通攝)했다. 불교는 물론 유가의 7서(書), 노자, 장자 등 제자백가에 대해서도 즉석에서 거침없이 설파하는 위엄을 떨쳤다. 그래서 그를 ‘유불도 삼교의 통섭자’ 또는 ‘동양학의 대가’라고 한다.

입산 이전에는 기호학파인 면암 최익현(1733~1906)-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 학통의 이극종(李克宗) 선생으로부터 13경(經)을 수학했고, 입산 이후에는 당대의 선승인 방한암(1876~1951) 선사로부터 선(禪)과 교(敎)를 모두 섭렵하여 불교와 동양학까지 겸했다. 평소 “유·불·선 삼교(三敎)가 모두 하나”라고 한 주장은 이러한 사상적 바탕에서 우러난 말이다.

1975년 8월 1일에 간행된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은 탄허 스님의 대표적 번역물이다. 대승경전의 꽃이자 선불교의 교학적·사상적 바탕이 되는 경전으로 한국 불교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다. 탄허 스님이 우리말로 완역한 ‘신화엄경합론’은 원전인 ‘화엄경’ 80권과, 중국의 화엄학자 이통현(李通玄·635~730)이 해설한 ‘화엄론’ 40권, 그리고 만당(晩唐) 때의 유명한 화엄 학승 청량징관(淸凉澄觀·738~839)이 주석한 ‘화엄경소초(華嚴經疏鈔)’ 150권을 합한 책이다. ‘화엄경’ ‘화엄론’ ‘화엄경소초’는 화엄학의 3대서(三大書)로 불린다. 고본(古本)으로 총 270권, 원고 매수 6만2500여장, 번역 기간 10년, 출판 기간 7년 등 총 17년의 결과물로 ‘신화엄경합론’ 완역은 탄허 스님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요,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탄허 스님은 이 화엄학 3대서를 직접 현토(懸吐·토를 다는 것), 완역·간행했으며, 그 밖에 화엄학의 개설서인 계환(戒環)의 ‘화엄요해(華嚴要解)’와 ‘화엄현담(華嚴玄談·8권)’, 그리고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이 저술한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까지 번역, 수록하여 화엄학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를 모두 집대성했다. 방대한 양(量)을 종단이나 기관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개인적 차원에서 번역 간행했다는 측면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탄허 스님이 화엄경을 좋아한 이유

▲ 20세 때 입산 전 글방 앞에서.
탄허 스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여 추진한 것이 1956년에 시작한 ‘대한불교 조계종 오대산 수도원’과 ‘영은사 수도원’이다. 이 두 수도원은 장래 한국 사회와 불교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탄허 스님은 이곳에서 불교와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지성과 인격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려고, 단신(單身)으로 불교와 동양사상 전반에 걸쳐 하루 6시간 이상 강의했다. 이 과정에서 수도원생들을 위한 항구적인 교재로 번역하기 시작한 것이 ‘화엄학 3대서’ 등이다.

탄허 스님이 화엄경, 화엄론, 화엄사상을 좋아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화엄의 가르침은 방대하고 심오하여 모든 불교의 진리를 포괄하고 있고, 간명하면서도 ‘누구나 다 성불(깨달을 수 있음)할 수 있다’는 진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통현의 ‘화엄론’은 유교와 도교를 끌어다가 포용하고 있기도 하다. 두 번째, 화엄경은 대승불교 최고의 경전으로 선(禪)의 사상적 기반이며, 특히 돈오(頓悟·일거에 깨닫는 것, 또는 그 깨달음) 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화엄의 사사무애관(事事無礙觀), 즉 법계연기사상(法界緣起思想)은 각기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원융무애하게 공존한다고 하는 탈(脫) 영역, 탈 관념의 세계관을 담고 있는데, 이것이 그의 기호 혹은 이상과 맞았다. 그가 자유롭게 불교와 유학, 노장학을 넘나들면서 세계관을 확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탄허 스님은 화엄사상이야말로 갈수록 복잡성을 띠며 심화되어 가고 있는 인간관계, 사회관계, 국제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미래사회의 대안이라고 보았다.


화엄경에는 뭐가 담겼나

화엄경은 대승불교의 정수로, 다양한 사상을 담고 있다. 예컨대 ‘금강경’의 경우 ‘공(空)’이라는 하나의 주제만 가지고 설명하는 데 비하여, 화엄경은 법신불(法身佛)사상·보살(菩薩)사상·유심(唯心)사상·법계연기(法界緣起)사상·정토사상 등 큰 주제만도 다섯 가지다. 법신불사상은 진리불(眞理佛)을 뜻하는데, 여기서 법신이란 진리에 대한 다른 이름으로 ‘부처(佛)의 근원에 대한 규명,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역사상 실존했던 석가모니불은 ‘진리의 성취자’ ‘법신불의 화현자’로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타난 것으로 설명한다. 부처의 본신인 법신, 즉 진리는 법계(法界·온 우주 공간 및 심식세계를 총칭함)에 가득한 영원불변의 존재라고 설명한다. 화엄경은 부처의 근원인 법신불을 비로자나불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비로자나란 지혜의 광명이 온 세상, 즉 법계를 두루 비추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보살사상은 자비의 실천자인 보살의 무한한 중생 사랑을 뜻한다. 그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 아낌없는 자비로 중생이 원하면 목숨까지도 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수한 자비정신으로서 한용운의 ‘님의 침묵’ 또한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마음으로 타인을 사랑하고 보살핀다면 이 세상은 낙원, 즉 불국토가 될 것이며, 동시에 보살로서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으로도 지혜와 자비의 실천을 주문하고 있다. 보살을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 즉 위로는 진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자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심사상은 만물의 주체에 대한 규명으로, 그것은 바로 내 자신 내 마음이라는 것을 뜻한다. 불교는 유물론이 아닌 유심론이다. 물질주의가 아니고 심본(心本)주의이다. 즉 모든 것, 모든 현상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으로, 그것을 상징하고 있는 말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행복과 불행도 마찬가지이지만, 괴로움과 즐거움도 모두 마음에 달린 것이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돈이 없다고 해서 불행하지도 않다. 한 예로 국민소득이 2만3000달러인 우리나라와 국민소득이 2000달러밖에 되지 않는 부탄의 행복지수를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행복지수에서 부탄은 세계 1위, 우리나라는 OECD 30위로 비교가 안 된다. 문제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화엄의 대표학설, 사사무애관

▲ 말년에 집필하던 대전시 유성 자광사 전경.
정토사상은 화엄경에서 말하는 정토인 연화장 장엄세계(蓮華藏 莊嚴世界)에 대한 것이다. 줄여서 연화장세계 혹은 ‘화장세계’라고도 한다. 화장세계가 바로 극락세계이다.

법계연기사상의 법계(法界)란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계, 이 우주공간, 그리고 심의식의 세계 전체에 대한 총칭이다. 모든 사물과 존재, 현상세계를 가리키며, 법계 속의 모든 사물은 각각 자기의 정체성과 본성, 영역을 갖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아무런 장애 없이 조화롭게 상호 공생,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네 가지 법계가 있는데, 청량징관(淸凉澄觀·738~839)은 사법계·이법계·이사무애법계·사사무애법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사법계(事法界)는 현상, 즉 사상(事象)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법계(理法界)는 진리의 세계이다.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는 진리와 사상(事象)이 교류하고 융합하는 세계이다. 따라서 본체와 사상, 즉 이법계와 사법계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다.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는 현상, 즉 사상(事象)과 사상이 교류, 융합하는 세계이다. 현상 그대로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이다. 청량징관은 이 가운데 사사무애법계가 곧 ‘법계연기’라고 한다. 여기서 ‘무애’란 ‘둘이 아님’ 곧 ‘하나(一)’를 뜻한다.

사사무애관 곧 법계연기사상은 화엄철학의 여러 사상 가운데서도 가장 화엄을 대표하는 학설이다. 현상적으로 보면 천차만별로 각각 다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보면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화엄에서는 ‘인드라망(網·인드라, 즉 제석천의 그물)’이라고 한다.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아무런 장애나 불편 없이 상의관계 속에서 상생 공존하고 있다(圓融無碍, 相依相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첩되고 또 중첩되어 있다(重重無盡)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화엄의 세계관, 즉 개별성과 전체성을 화엄에서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라는 함축적인 말로 표현한다. 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라는 뜻이다.

예컨대 봄이 되면 정원에 갖가지 꽃들이 서로 뒤엉켜 있지만, 그들 사이에 다툼이라는 것은 없다. 분명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지만(相卽相入), 아무런 문제 없이 자라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어쩌다 거리에서 슬쩍 팔만 부딪쳐도 불쾌해 한다. 인상을 찌푸리고 심하면 살인까지 하지만 화단의 꽃들은 전혀 장애 없이(無碍) 각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현대사회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상호 개개인의 세계(가치·능력·프라이버시)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공존해야 한다. 개별성(一)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전체성(多)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내가 본 탄허 스님

학문·참선 몰두… 명예·정치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탄허 스님은 선(禪)과 교학을 겸비한 선승이었다. 항상 학문과 참선에 몰두했고, 명예 같은 것은 무가치한 것, 권력은 와각쟁투(蝸角爭鬪·달팽이 뿔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다)로 여겼다. 탄허 스님은 늦어도 새벽 2시 반쯤이면 일어나 좌선을 했다. 생활은 소탈·검소·겸손했고 절대 3배를 하지 못하게 했다. 권위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누구든 찾아오면 예의를 갖추어 맞이했고 손님이 가면 항상 문까지 배웅하셨다.

탄허 스님이 자신의 생애에 있어 설정한 목표는 도(道)였다. 도(道)와 하나가 되는 것 외에는 인재 양성과 불유도(佛儒道) 3교의 대표서인 ‘화엄경’ ‘역경(易經, 즉 주역)’ ‘노자도덕경’ ‘장자’를 완역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것만은 후학을 위하여 번역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모든 것이 다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항상 미래를 이끌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것이 현실 속의 이상이었다.

또한 탄허 스님은 성인의 말씀이나 도(道)에 관한 글이 아니면 직접적으로는 쓰시지 않았다. 현재 일반서에 수록된 글이나 책들은 모두 당시 기자들이 취재한 것, 명사(名士)들과 대담한 것이다. 탄허 스님은 언론과의 대담을 통하여 향후 우리 사회, 또는 세계 정세나 지리적 변화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예언들을 많이 하셨지만 사실 그런 것은 탄허 스님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관심의 대상일 뿐, 탐구의 주제는 아니었다. 간혹은 사실 이상으로 부풀려지고 과장된 것도 적지 않다. 이런 것들 중 대부분은 한 훌륭한 종교자가 세상을 뜨고 나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윤색설화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탄허 스님은 항상 인의(仁義)에 의한 왕도정치를 강조하셨다. 또 인위(人爲)보다는 자연을 중시했다. ‘장자’에 나오는 숙과 홀의 이야기(혼돈칠규·混沌七竅)와 7년 동안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던 양혜왕과 포정 이야기(庖丁解牛), 요임금과 허유, 원추와 올빼미, 와각쟁투, 뱁새와 비둘기, 지인(至人), 진인(眞人) 등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필자의 삶에 바탕이 되고 있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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