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신문 정암사 소개 (2012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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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암사 작성일12-04-24 12:07 조회16,431회 댓글0건본문
| 정선 정암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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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무상ㆍ불생불멸’ 신라 진평왕 때 한 사내가 있었다. 성이 김 씨인 그는 망국이긴 하나 진한(辰韓) 진골 출신으로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후사가 없었다. 우연히 접한 불교에 매료돼 천수관음에 귀의해 간절히 기도했다. 자장율사의 이야기는 〈삼국유사〉 곳곳에 나온다. 황룡사 9층탑 관련 조와 진신사리 영험담 등에도 등장하지만, 앞서 언급한 율사의 탄생배경을 비롯해 생애 및 업적은 ‘자장이 계율을 정하다[慈藏定律]’조에 상세히 언급된다.
정암사 창건담과 자장율사의 최후는 ‘자장정율’조에 매우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자장율사가 수다사에 기거하던 중, 중국 청량산 북대에서 본 문수보살이 꿈에 나타나 “내일 대송정에서 만나자”라고 말한다. 율사가 그곳에 다다르니 “태백산 갈반지(葛蟠地)에서 다시 만나리라”하고는 사라졌다. 태백산에 이르러 칡넝쿨이 서린 곳을 찾다 나무 아래 커다란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을 갈반지로 판단해 석남원(지금의 정암사)을 세웠다. 태백산 정암사는 이렇게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라는 명예와 더불어 자장율사의 한을 간직한 곳이다. 중앙고속도로 제천IC를 나와 영월방면으로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강원랜드를 지나 싸리재를 가는 중간에 안내석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 해 10분 정도 들어가면 정암사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냈으나, 참으로 멸한 것은 아니고 항상 이곳에 머물며 법을 설하노라. 나는 항상 여기 머물지만 신통력으로 전도된 중생들에게 비록 가까이 있으나 보지 못하게 한 것 뿐. 중생들은 내가 멸도함을 보고 사리를 널리 공양하며 모두 그리워하고 연모하며 우러르는 마음을 내라.’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경구다. 직접 이곳에 오기 전까지 책을 읽으면서 낙산사 가는 도중에 만난 관음보살을 알아보지 못한 원효와 진신석가를 바로보지 못한 효소왕의 일화처럼 ‘이모취인’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자장율사 관련 행장에는 유독 문수보살이 자주 등장하는데,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한다. 결국 찾아온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온전한 깨달음을 갖추지 못해서이며, 그 원인은 집착과 아상에 있다는 가르침이라고. 하지만 적멸궁 주련과 이어지는 부분을 접하고 나니 정암사는 ‘제법무상 불생불멸(諸法無相 不生不滅)’의 진리 그 자체를 강조하고 있었다. 도난당한 자장율사 가사와 더불어 정암사의 또 하나의 명물, 보물 410호로 지정된 수마노탑으로 향했다. 극락교를 나와 일심교를 건너 산비탈에 난 계단을 따라 오르자 모전석탑이 나왔다. 안동 등지의 모전 탑들이 평지에 있는 것과 달리 절벽 끝에 축대를 세우고 그 위에 탑을 세운 점이 이채롭다. 1972년에 전면 해체ㆍ복원됐는데 이때 5개의 탑지석과 더불어 최하단 적심부에서 사리와 청동함, 은과 금으로 만든 장엄구, 염주, 금구슬 등이 발견됐다. 고려시대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모습은 1653년 중건 때 갖춰진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수마노탑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정암사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자장율사는 산머리에 탑을 세우려 했는데 세울 때마다 무너졌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니 하룻밤 사이 칡이 세 갈래로 뻗어 나갔다. 칡이 멈춘 곳에 각각 수마노탑, 적멸궁, 요사를 지었다. 또 하나 눈에 띠는 부분은 본래 탑이 세 개가 있었다는 것이다. 금탑과 은탑이 있었지만 감춰져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적멸궁 주련의 내용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는 항상 여기 있다. 다만 전도된 중생들이 보지 못한 뿐. 신명을 다하라. 유멸불멸(有滅不滅)도 방편에 불과하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분별을 떠나지 못한 중생들은 볼 수 없다. 갑갑함과 먹먹함이 밀려온다. 순례차 동행한 부모님을 따라 절을 하기 시작했다. 몇 번을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쯤, 다섯 살 난 아들 녀석이 말했다. “봐요. 탑이 빛나요!” 깜짝 놀라 올려다봤지만, 그대로다. 그런데 이 녀석이 “이리 와 봐요. 빛이 나잖아요”라고 재촉했다. 아들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춰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 봤다. 해가 탑 상륜부에 걸렸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의 눈과 탑 끝과 해가 일직선으로 섰고, 그 위에 해무리가 떠 있었다. 돌아오는 차안. 아버지가 혼자말로 “그래서 천진불이라고 하나 보다”라고 읊조린다. ‘전도된 중생’이란 ‘고동은 동색이요, 가제는 게 편’이라는 속담처럼 세상 모든 것을 임의로 규정하고, 거기에 맞춰 편 가르려는 인간들의 그릇된 행태를 꼬집는 것은 아닐까. 다섯 살짜리 꼬마가 무엇을 봤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순례객들은 그저 묵묵히 서 있는 돌로 된 탑만을 봤을 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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