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력과 이적의 적멸보궁 정암사(淨巖寺)(일간투데이)2019.10.01 0
 작성자: 정암사  2019-10-0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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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력과 이적의 적멸보궁 정암사(淨巖寺)

최종걸 주필

정암사(淨巖寺)는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해 한국 불교사에 사리 신앙이 시작된 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리(舍利)는 불교에서 계(戒), 정(定), 혜(慧) 등 삼학(三學)을 성취한 수행자에게 나타나는 결정체로 여기고 있다. 스님들 사후 화장, 다비하는 과정에서 영롱한 구슬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유골 결정체를 통칭한다.

태백산 또는 함백산 정암사(淨巖寺)는 오대산 상원사, 영월의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양산의 통도사와 더불어 부처님 정골사리(頂骨 舍利)를 봉안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다.

자장 스님이 세속의 인연이 다 할 즈음에 마지막으로 중국 오대산에서 뵙던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싶어 기도 정진 끝에 창건하고 입정에 들어 계율(戒律)로 수행으로 삼으라는 천상의 법문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정암사라는 명칭은 자장율사 스님이 석남원(石南院) 일대가 숲과 골짜기가 해를 적당히 가려주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그지없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정골 사리가 봉안된 수마노탑(水瑪瑙塔)과 적멸보궁 그리고 자장 스님의 주장자(拄杖子)가 고목(古木)으로 자라고 있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로 1410에 자리 잡고 있다. 눈 덮인 산 위로 칡 세 줄기가 뻗어 내려와 지금의 수마노탑, 적멸보궁, 법당 자리에 멈추니 그 자리에 탑을 세웠다 하여 정암사를 속칭 갈래사라 불렀고, 갈래란 지명도 생겼다.

적멸보궁 뒤쪽에 있는 탑을 수마노탑이라 하게 된 연유는 자장율사가 643년 선덕여왕 12년에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그 도력에 감화되어 마노석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숨겨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할 때 이 돌로 탑을 조성하라고 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적멸보궁 입구로 들어서면 주장자라는 고목이 있는데 이 고목은 자장 율사가 집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것으로 다시 꽃이 피면 자장율사가 재생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정암사 사적기 등에 따르면 세상 인연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안 자장율사는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하길 서원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꿈에 과거 당나라 유학 시절 중국 오대산 북대에서 범어게(梵語偈)를 주던 범승(梵僧)을 만나 태백산 갈반지에서 문수보살이 만나자는 말을 전해 듣고, 제자들에게 “계율은 등불이니 꼭 지켜 도업(道業)을 이룰 것"을 당부하고는 갈반지를 찾아 길을 나섰다.

스님은 "갈반지라…? 갈이란 칡을 뜻하고 반이란 소반을 말함일 텐데 거참 묘한 지명이로구나"라고 생각하고 산속을 헤맨 끝에 칡넝쿨이 엉켜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칡넝쿨 위에는 10여 마리의 구렁이가 똬리를 튼 채 엉켜있어 화엄경 독송을 하자 엉켜있던 구렁이들이 스르르 몸을 풀었다. 그날 밤 저장 스님의 꿈에 뱀이 나타나 울면서 "스님 저희는 전생에 불법을 공부하던 승이었지만 수행을 게을리하고 시주 물품을 아까운 줄 모르고 낭비하다가 그만 뱀의 인과응보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참회를 거듭하면서 큰스님이 나타나 제도해 주시길 학수고대하던 중 스님을 만났으니 몸을 바꾸도록 경을 독송하고 법문을 설하여 주옵소서. 저희는 단식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누워 있는 자리 밑에는 금은보화가 묻혀있으니 그 재물은 절을 창건하는 데 쓰십시오."라고 했다고 한다.

화엄경을 독송하기 7일째 되는 날 구렁이들이 죽어 화장하여 천도한 후 그 자리를 파보니 과연 금은보화가 가득 묻혀있었다. 자장 스님은 그곳이 바로 문수보살을 친견할 인연 지로 생각하고 석남원을 창건하니 그 절이 바로 오늘날 정암사라고 사적기는 소개했다.

사적기가 소개한 자장율사와 문수보살의 마지막 만남도 이채롭다. 어느 날 다 떨어진 방포를 걸친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서 절 앞에 와서 자장율사를 만나기를 청했지만, 시자 스님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러자 늙은 거사는 "웬 말이 그리 많으냐? 어서 가서 내가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일러라"라고 호통을 쳤다. 전갈을 들은 자장 스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잘 타일러서 보내도록 해라"라고 시자 스님에게 전하자, 늙은 거사는 "아상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보겠느냐"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삼태기를 거꾸로 쏟았다.

그러자 그 안에 들었던 죽은 강아지는 땅에 떨어지면서 큰 사자보좌로 변했고, 거지 노인은 사자를 타고 빛을 발하면서 허공으로 사라졌다. 놀란 시자로부터 이 말을 들은 자장 스님은 크게 탄식했다. "참으로 나의 아상(我相)이 문수보살 친견을 막았구나, 나의 수행이 헛것이었구나!"라고 탄식을 한 후 "육신으로는 문수보살을 만날 수가 없어 내 이곳에서 입정에 들어 만나 뵙고 참회할 것이니 3개월간 내 몸을 잘 보관토록 해라"라는 말을 마친 자장 스님은 조용히 바위에 앉아 입정에 들어갔다. 그 후 3개월이 되어도 신체와 안색은 평상시와 다름이 없는데 자장 스님은 깨어나질 않았다. 그렇게 백일이 되는 날, 어느 스님 한 분이 와서 스승이 열반에 들었는데 왜 다비를 하지 않느냐고 호통을 쳐 제자들은 자장 스님이 입정에 든 바위에서 다비식을 가졌다. 식이 끝나자 공중에서 자장율사의 법문 소리가 들렸다.

"내 몸은 이미 티끌이 되었으니 의탁할 곳이 없구나. 너희들은 계에 의존하여 생사의 고해를 건너도록 해라”라고 전하면서 출가 후 만났던 문수보살을 입정에서도 다시 만나 계율 수행을 당부한 이적이 서린 곳이 정암사다.

최종걸 주필  jgchoi62@dtoday.co.kr

* 기사원문보기 http://www.d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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