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머문 그 곳] <70> 정암사와 아우라지(불교신문)2021.03.04 0
 작성자: 정암사  2021-03-09 10:25
조회 : 128  
[발길 머문 그 곳] <70> 정암사와 아우라지
  • 김형주 기자

“돌아가자! 아상(我相)이 있는 자가 어찌 날 보리오”
찾아온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하고 뒤늦게 항망히 쫓아가던 자장율사는 수마노탑이 보이는 저 산등성이 어딘가에서 입적하고 만다. 태백산 정암사에는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자장율사의 간절한 서원이 담겨 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정선 아리랑 가사처럼 강원도 정선은 애잔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 

정선군 여량면에 송천과 골지천 두 물줄기가 어우러져 만난다는 의미로 ‘아우라지’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여기서부터 남한강 천리 물길을 따라 처음 뗏목이 출발한 곳이기도 하다. 아우라지에는 강물이 불어 만나지 못하는 님을 기다리고 있는 아우라지 처녀상이 한 없이 강물을 바라보며 서 있다. 

정선에는 또 다른 애절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는 정암사가 그 곳이다.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 제4권 자장정율 조에 따르면 신라 자장율사는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태백의 깊은 갈반처(정암사)를 찾았다. 

‌정암사 적멸궁, 진신사리가 있는 수마노탑 방향으로 예배를 하게 되어 있어 적멸보궁으로 전각 안에는 부처님을 모시고 있지 않다.

 

어느 날 어떤 노거사가 남루한 가사를 수하고 칡으로 된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가지고 와서는 시자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자장을 보러 왔다”고 했다. 

시자는 “스승을 받들어 모시면서부터 나의 스승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이를 보지 못하였는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러한 광언(狂言)을 하는가”라고 답했다. 이에 거사가 말하기를 “다만 너의 스승에게 고하여라”고 했다. 시자가 들어가서 고하니, 자장이 깨닫지 못하고 말하기를 “심각한 광자(狂者)인가 보다”고 했다. 시자가 나와서 그를 쫓으니, 거사가 말하기를 “돌아가자, 돌아가자 아상(我相)이 있는 자가 어떻게 나를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며, 삼태기를 뒤집어서 터니 죽은 개가 변화하여 사자보좌(師子寶座)가 되었다. 그 자리에 올라가 방광하며 떠나갔다. 

자장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바야흐로 위의를 갖추고 방광한 빛을 찾아서 남쪽봉우리(南嶺)로 황급히 올라갔다. 그러나 이미 묘연(杳然)하여 미칠 수 없게 되니 마침내 몸이 떨어져서 죽었다(殞身). 이에 다비(茶毘)하여 뼈를 돌구멍 가운데 안치했다. 

정암사 수마노탑이 국보로 지정된 이후 탑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오대산부터 태백산까지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한 노력은 결국 허사로 돌아가고 안타깝게도 자장율사는 이곳에서 입적하고 만다.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문수보살을 기다리던 정암사를 지난 2월20일 찾았다. 

지난 해 정암사에는 경사가 있었다. 10년 가까운 노력 끝에 6월 마침내 수마노탑이 국보 332호로 승격했다. 

정암사 주지 천웅스님은 “수마노탑이 국보로 승격된 후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절을 찾은 거의 모든 분들이 탑을 찾아 참배를 한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기도객은 적지만 국보가 된 수마노탑에 올라 코로나19 극복을 기도한 불자들의 정성이 모여 져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정암사에서는 지역과의 연계를 위한 콘텐츠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2월5일 정선 정암사와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소는 ‘지역전통문화와 정암사 문수신앙의 콘텐츠화 방안 모색’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술대회에서 석길암 동국대 교수는 ‘정암사 문수신앙의 콘텐츠화 방안’이란 주제발표에서 “정선에서 정암사가 품고 있는 이야기와 유산은 언제든 지역사회를 미래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원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정선 여량면에 있는 아우라지 처녀상, 아우라지는 정선 아리랑의 발상지다.
 

 

정암사에서는 문수신앙과 자장율사의 스토리를 통해 지역민들을 보듬어 줄 필요가 있다. 1948년 함백탄전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산간오지였던 정선은 급속히 산업화에 들어갔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활기찼던 정선은 1980년대 중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고 1980년 절정을 찍었던 인구수는 이제 3분의 1 수준으로 내려왔다. 폐광지역 특별법으로 설치된 카지노가 들어오면서 정선은 또 다른 분위기의 지역이 되어가고 있다. 

아우라지에서 강을 바라보며 한 없이 기다리는 처녀, 석탄 황금기에 얼굴에 검은 칠을 했지만 행복했던 이웃들의 미소가 그리운 정선의 모습이다. 그리고 자장율사의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는 간절한 서원이 담긴 곳이 정선 정암사다.

* 기사원문보기 http://www.gukj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5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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